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이비드 로빈슨 (문단 편집) == 이것저것 == * 슬하에는 아내와 함께 아들 셋을 두고 있다. 아들 이름은 데이비드 로빈슨 주니어, 코리 로빈슨, 저스틴 로빈슨이다. 이중 코리 로빈슨은 [[노터데임 대학교]]에서 [[FBS|칼리지 풋볼]]선수로 2013~2016년에 활동하다가 부상을 입은 뒤 미식축구를 단념하기로 했고 일반 학생으로 마지막 학년을 마쳤다. 저스틴 로빈슨은 듀크 대학교에서 2016~2020년에 농구선수로 활동한뒤 [[몬테네그로]]로 건너가서 선수로 활약하다 스퍼스 산하의 G리그 오스틴 스퍼스에 입단했다. 등번호는 아버지의 번호를 그대로 딴 50번이다. *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성격은 굉장히 선량하고 착하다고 한다. 이게 실생활에서만 이렇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지만 문제는 '''코트위에서도 평상시 성격과 별 다를게 없다는 것.''' 성격이 착하다보니 동료들이 실책을 해도 싫은 소리 한번 한적이 없다. [[마이클 조던]]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너희들은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타입의 리더라면 로빈슨은 '''"내가 말없이 열심히 하면 동료들이 따라오겠지?"''' 타입의 리더라고 볼 수 있겠다.[* [[패트릭 유잉|유잉]]도 비슷한 타입의 리더라고 볼수 있다. 참고로 유잉 역시 리더쉽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의 조용한 리더는 티가 안나기 때문에 [[팀 던컨]]처럼 실적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호사가들의 먹이감이 되는 경우가 잦다. 다만 유잉은 조용한 편이긴 했지만 플레이 스타일도 그렇고 성격도 순동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샤킬 오닐|오닐]]은 자신이 성장하던 시절 유잉을 보며 "사나움"을 배웠다고 한 적이 있다) 플옵에서 [[존 스탁스]]가 [[레지 밀러]]의 도발에 넘어가 그에게 박치기를 하고 퇴장 당하는 뻘짓을 하자 마구 화를 내며 코트 위에서 대놓고 혼을 낼 정도. 그러나 로빈슨은 너무 착하고 순했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되었다.] 그래서 다들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였던 라이벌에게 없던 리더쉽 부재 논란이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된 게 [[데니스 로드맨]]과의 관계였다. 로드맨이 은퇴후 한 인터뷰에 따르면 로빈슨은 종종 로드맨에게 "하나님에 대해 얘기하자"고 접근했으며 그의 지나친 기행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참고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스퍼스]] 관계자들 역시 로드맨이 오토바이 사고로 어깨를 다쳐서 나타나는 등 통제가 어려운 모습을 보이자 그의 뛰어난 기량에도 재계약을 주저했다. 이런 답답한(?) 모습에 후술할 플레이오프에서의 약한 모습까지 더해 급기야 로드맨이 공개적으로 로빈슨을 까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데니스 로드맨]] 항목 참조.] 대체적으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샌안토니오]]는 이런 분위기를 이어받아 리더들이 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팀을 이끌고 있다. [[데이비드 로빈슨|로빈슨]] → [[팀 던컨|던컨]] → [[마누 지노빌리|마누]] / [[토니 파커|파커]] → [[카와이 레너드|카와이]]로 이어지는 계보이다만 카와이는 아예 목소리를 내지 않고 팀을 떠났다~~그 과정속에 많은 논란들이 있었지만~~카와이 이후로는 실력면으로는 [[더마 드로잔|드로잔]]이, 경력이나 정신적인 면으로는 [[패티 밀스]]가 팀을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2021-22 시즌에는 둘 다 팀을 떠났다.. * 가장 큰게 새가슴 논란. 시즌 MVP를 수상했던 94-95시즌 서부 컨퍼런스 결승전때 로빈슨에게 MVP를 내준 것 때문에 칼을 갈고 나온 6번 시드[* 16강 플레이오프 시스템에서 가장 낮은 시드의 NBA 파이널 우승 사례이다.] [[휴스턴 로키츠]]의 [[하킴 올라주원]]과의 매치업에서 로빈슨이 거의 완패하고[* [[하킴 올라주원|올라주원]]은 그 시즌 MVP를 자신이 아닌 로빈슨이 탔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나 있었고, 이 시리즈에서 자기가 로빈슨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작정하고 온갖 화려한 기술을 총동원해 역대급 빅맨 수비수인 로빈슨을 압도했다. 올라주원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이 시리즈에서 하킴이 구사한 기상천외한 무브들이 많이 나온다. 로빈슨은 (적어도 정규시즌에서는) 절대 하킴에게 약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를 비롯해 임팩트 있게 당한 몇몇 경기 때문에 하킴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하킴 본인 제외 최다 출연자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팀이 업셋당해 탈락했기 때문. 물론 이걸 가지고 로빈슨이 새가슴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6번 시드 상대로 당한 업셋이기도 하고, 그때 같이 뛰던 [[데니스 로드맨]]이 "데이비드 로빈슨이 하킴과의 정면대결을 피한다. 그는 중요한 순간 도망가는 겁쟁이다."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해서 논란이 되었고 로드맨이 [[시카고 불스]]로 쫓겨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러가지로 이 때가 로빈슨의 농구인생에서 손에 꼽을 흑역사였다. 일부 팬들은 로드맨이 이해간다고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이 당시의 로빈슨의 표정을 보면 정말 망연자실해있는 표정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정규시즌에 비하면 플레이오프에서는 좀 힘을 못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후에 [[팀 던컨]]이 입단하고 나서 2인자 자리로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새가슴 논란도 사그러들었다. * [[팀 던컨|던컨]]과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2000년도에 FA로 풀렸던 던컨이 거의 [[올랜도 매직]]행으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을때, 직접 던컨을 찾아가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설득. 여기에 감복한 던컨은 이후에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선수로 남았다. * 95-96시즌을 앞두고 팀과 종신계약을 맺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 뉴스는 당시 국내스포츠 뉴스에서도 잠시나마 언급되었다. * 대한민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1988 서울 올림픽]]때 미국 국가대표로 참가했지만 준결승에서 [[소련]] 대표팀에 패하여 동메달에 그쳤다.[* NBA 사이트들에서 가끔 나오는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로빈슨을 발랐다"는 떡밥이 있는데 실제 경기에선 비등비등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로빈슨과 사보니스의 대결로만 본다면, 득점의 양에서도 그렇고 로빈슨의 상대적인 우세로 보인다. 절대 누가 누굴 바르거나 압도한 그런 경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두 선수보다 가드진과 슈터들의 활약의 차이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이때 로빈슨은 아직 NBA 선수가 아니었는데 이 올림픽에서 소련에게 동메달에 그친 후에 NBA 측은 "왜 다른 나라 선수들은 프로 선수들을 내보내는데 우리는 대학생들을 내보내서, 우리 대학생들이 상대국가 프로선수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오게 하느냐!" 라고 불평이 일기 시작했다. 결국 4년후에 로빈슨도 포함된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s-2.3|드림팀]]이 결성되었다.] 그 후 로빈슨은 4년 후에 열리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s-2.3|드림팀1]]의 주축 멤버로서 참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모국에서 열린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도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s-2.5|드림팀3]]의 일원으로 참가해 역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위에 언급한 대로 정말 복된 커리어를 보냈다. 데뷔부터 은퇴까지 쭉 한 팀에서만 보냈고,[* 같은 4대 센터들 중 [[패트릭 유잉]]은 말년에 소속팀에게 팽당하고, [[하킴 올라주원]]은 계약 파토로 이적, [[샤킬 오닐]]은 레전드급임에도 소속팀 개수로는 저니맨급 커리어를 보유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른 4대 센터에 비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덜받는 연고[* 사실 [[샌안토니오]]는 도시 규모가 절대 소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한 주(state)인 [[텍사스]]의 대도시이고, 미국 내에서도 주요 도시로 꼽힌다. 하지만 텍사스에는 다른 대도시 지역들도 많기에 샌안토니오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다.]를 한 팀에 있었지만 그것을 가지고 불만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종신계약을 맺었지만 팀은 그에게 섭섭치 않게 대우를 해줬다. 또한 '''아주 이상적인 세대교체'''를 스스로 하면서 내려놓을 때를 아는 현명함도 보여주었다. 다른 팀들이 베테랑과 떠오르는 젊은 선수간의 파워 게임으로 소모전을 펼친 것과는 대조적. 그 결과는 [[1999 NBA 파이널|두]] [[2003 NBA 파이널|번]]의 우승반지. 특히 [[2003 NBA 파이널|두 번째 우승]]은 은퇴 시즌이자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 획득했던 것이라 끝마무리도 화려하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실제로 사생활, 코트 위에서 모습, 인품 등 깔게 하나도 없고 스캔들조차 없는지라 그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입학 부정 스캔들에 대해 "스포츠 사상 가장 추악한 일"이라고 한 걸 갖고 "아들이 듀크대 가서 까는거 아니냐"고 깔 정도이다. 그 외에도 올라주원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압도당한 것, 71점을 넣은 걸 갖고 까는데, 사실 전자는 아쉬울 수 있어도 스포츠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후자는 위에 나와있지만 애초에 까일게 아니다. 로빈슨이 태클 걸만한 흑역사는 없는데 그에 반해 안티는 어디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니 별 이상한 걸 갖고 까는 것. [[파일:external/upload.inven.co.kr/i3382455914.gif]] * 13-14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샌안]]이 [[2014 NBA 파이널|홈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을 때]] 친히 납시어 [[팀 던컨]]과 포옹을 나누었다. 이 때 로빈슨의 동료였던 션 엘리엇은 경기 해설을 하고 있었고 샌안토니오의 전설 [[조지 거빈]], 로빈슨과 함께 우승 당시 동료였던 에이브리 존슨까지 경기를 관전한 뒤 후배들의 우승을 축하해주었다. 아이같이 좋아하며 펄쩍 안겨드는 던컨이 백미. * 득점왕과 올해의 수비상을 모두 받아본 두 명 중 한 명이다.[* 다른 한 명은 [[마이클 조던]].] 다만 한 시즌에 동시에 수상한 선수는 [[마이클 조던|조던]] 뿐이다. * 2018년 NBA 신인으로 반드시 [[샌안토니오 스퍼스|샌안]]에서 뛰어야만 할 것 같은 '''[[던컨 로빈슨]]'''이라는 이름의 선수가 등장해 로빈슨의 이름도 소소하게 언급이 되었다. 이 선수는 1994년생 백인 선수로 포지션은 SG/SF이며, 드래프트에서는 지명받지 못했지만 [[마이애미 히트]]와 투웨이 계약을 맺고 2019년 NBA에 콜업되어 뛰고 있다. [각주] [[분류:미국의 농구 선수]][[분류:NBA MVP]][[분류:NBA 영구결번 선수]][[분류:1965년 출생]][[분류:센터(농구)]][[분류:키웨스트 출신 인물]][[분류:샌안토니오 스퍼스/은퇴, 이적]][[분류:원클럽맨/농구]][[분류:1989년 데뷔]][[분류:2003년 은퇴]][[분류:미국의 올림픽 농구 메달리스트]][[분류:1988 서울 올림픽 농구 메달리스트]][[분류: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농구 메달리스트]][[분류:1996 애틀랜타 올림픽 농구 메달리스트]] [[분류:미국해군사관학교 출신]][[분류: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분류:미국의 개신교 신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